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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 - F. 스콧 피츠제럴드 F. Scott Fitzgerald

드디어 <위대한 개츠비>를 다 읽었다. 마음의 위안이 얻고 싶어서, 그리고 출장 중 비행기 안에서 시간도 때울 겸 읽기 시작했는데,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멋진 작품이었다. 전문적인 문학 비평을 할 수 있는 능력은 당연히 없고, 그냥 느낀 바를 몇 자 적어보겠다.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 가장 먼저 말하고 싶은 점은, 이 소설이 거의 100년이나 된 고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이 충분히 공감할 만 하다는 점이다. 물질만능주의에 물들어있는 인간 군상들, 그 와중에 자신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실패하는 주인공,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의외의 결과를 불러오는 반전 등등... 어찌 보면,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막장드라마와도 유사한 점이 있다. 이런 드라마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어떤 여자가, 돈 때문에 사랑 없는 결혼을 했는데, 예전에 사랑했지만 가난해서 헤어졌던 남자가, 피나는 노력 끝에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자기 과거를 숨긴 채 다시 그녀에게 접근하고, 당연히 이런 저런 갈등이 생겨나는데, 결국에는 그 여자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슬프게 최후를 맞이한다." 상당히 익숙하지 않은가? 이게 바로 <위대한 개츠비>의 내용이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분명 막장드라마와는 차이가 있다. 우선, 인물들이 상당히 입체적이다. 개츠비는 분명 주인공이지만, 불법적인 일로 돈을 번 인물이다. 그리고 자기 사랑을 합리화하려고 하지만, 어쨌든 남의 아내를 탐하는 불륜남이다. 데이지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여자지만, 결국 돈을 선택하는 속물이며, 책임감이나 지적 능력도 좀 떨어진다. (딸이 되기를 바랬던 "예쁘고 머리 나쁜 여자"가 바로 자기 자신이다.) 톰 뷰캐넌은, 전반적으로 악역처럼 보이지만, 머틀이 죽었을 때 진심으로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 어느 정도의 순수함 역시 가지고 있다. 즉, 악역은 한없이 나쁜놈이고, 주인공은 한없이 착한 평면적 인물만

흡연과 언론

가끔 신문 또는 인터넷 기사에서 흡연과 질병의 상관관계를 언급한 기사들을 보면,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참고로, 나는 비흡연자다.) 대부분의 기사는 이런 식이다: "흡연이 폐암 발생 위험을 X배 증가시키는 것으로 밝혀져..." 특이한 점은, 폐암 발생 위험이 몇 배 증가한다는 언급만 할 뿐, 실제로 몇%에서 몇%로 증가하는지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는 기사는 거의 없다. (사실,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지만, 내가 세상의 모든 기사를 전부 확인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거의" 없다고 표현하겠다.) 왜 그럴까?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흡연자든 비흡연자든 폐암 발생 가능성(%)이 너무 낮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예를 들어, 비흡연자의 폐암 발생 위험이 0.1%라고 하자. (당연히 임의로 예를 든 것이다. 실제 수치는 나도 모른다.) 그리고 흡연이 폐암 발생 위험을 10배 높인다고 가정해보자. 그래봤자, 흡연자의 폐암 발생 위험은 1%에 불과하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흡연을 하면 폐암 발생 위험이 10배로 높아져서 1%가 된다." 라고 기사를 작성하면... 아마 많은 흡연자들이 "생각보다 별로 높지 않네. 그냥 피우자." 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어쩌면, 흡연의 위험성이 생각보다 작다고 생각해서 새로이 흡연을 시작하는 사람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즉, (확실한 근거가 없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위와 같은 방식으로 기사를 작성하는 것은 금연을 권장하기 위한 일종의 "계도" 목적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흡연은 나쁜 것이고 금연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지만, 언론이 정확한 정보를 의도적으로 숨기면서까지 그러한 계도 행위를 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인가... 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포퓰리즘 & 내로남불

지난 글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 나는 보수의 가치를 믿는 사람이고 당연히 5 월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투표하지 않았다 . 그러나 , 결국 예상대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됐다 . 비록 대선 당시에는 내가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지만 , 그와 관계 없이 문재인 대통령이 성공적인 대통령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문재인이라는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대통령의 성공은 곧 대한민국의 성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 그러나 , 최근 문재인 정부의 모습을 보면 , 우려스러운 부분이 너무 많다 . 비록 한달여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 그 동안 문재인 정부가 보여준 문제점은 " 포퓰리즘 " 과 " 내로남불 ( 내가 하면 로맨스 , 남이 하면 불륜 ) " 두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 1) 내가 생각하는 포퓰리즘의 정의는 " 대중의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선택지와 실제 국가에 도움이 되는 선택지가 상충할 때 , 국익 보다는 인기를 선택하는 정치 행태 " 다 . 그리고 , 문재인 정부는 철저하게 인기를 우선시 하고 있는 것 같아 심히 우려된다 . 대표적인 것이 위안부 합의 번복 논란이다 . 일본이 저지른 잘못은 너무나 명백하고 , 나 역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에 대한 사과나 보상을 더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 . 그러나 , 국제적인 외교 관계를 오로지 우리 의사대로만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방법 따위는 없다 . 일본은 일본의 입장이 있고 , 비록 자신들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지만 ,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 ( 더구나 , 대한민국은 수많은 강대국들 틈에 끼어 있는 약소국에 불과하다 . 아쉽지만 인정해야 할 사실이다 .) 그러한 상황을 고려하여 어느 정도 타협점을 찾은 것이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다 . 국익을 위해 일본과의 관계 개선 및 협력 확대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 ( 박근혜 대통령은 비판 받아 마땅하지만 ,

의미불명

최근 충치 치료를 했다 . 치료를 받은 직후에는 이가 시리고 욱신거려서 상당히 고통스러웠다 . 그런데 불현듯 , 내가 " 이가 시리다 " 또는 " 욱신거리다 " 라고 표현하는 그 느낌이 , 다른 사람들이 같은 단어를 사용하여 표현하는 느낌과 동일한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 예를 들면 , 우리가 사용하는 " 맛 " 을 표현하는 단어를 생각해보자 . 맛은 비교적 명확히 그 느낌을 공유할 수 있다 . 부모가 말을 배우는 아이에게 사탕을 주고 그 사탕의 맛을 표현할 때는 " 달다 " 라는 단어를 사용한다고 가르칠 수 있다 . 이게 가능한 이유는 , 사탕의 맛은 먹는 사람 누구에게나 비교적 일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 결과적으로 부모가 " 달다 " 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표현하는 맛은 아이가 배워서 알게 되는 " 달다 " 라는 단어가 표현하는 맛과 동일하다 . 그런데 , 다양한 종류의 통증을 표현하는 단어는 상황이 좀 다르다 . 물론 단순히 " 아프다 " 라는 단어는 쉽게 가르칠 수 있다 . 그러나 위에 언급한 " 이가 시리다 ", " 욱신거리다 " 와 같은 단어들뿐만 아니라 " 뻐근하다 ", " 쓰라리다 " 등등 복잡미묘한 통증을 표현하는 단어는 아이에게 가르치기가 쉽지 않다 . 이와 같은 단어들이 의미하는 바를 인위적으로 아이가 느끼도록 할 방법이 없고 , 그렇다고 해서 그 느낌을 아이에게 정확히 말로 설명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 외국인에게 " 욱신거리다 " 라는 단어를 설명한다고 상상해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 결국 , 내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 욱신거리다 " 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 그걸 듣는 다른 사람들이 연상하는 느낌은 조금 다를 수 있을 것 같다 . 경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