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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2세


돈이든 권력이든, 뭔가 "힘"을 가진 인간은 아무래도 겸손함과 자제력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후진국의 독재자들을 보면 그런 경향이 뚜렷이 나타난다. 대부분의 후진국들은 선진국의 식민지였다가 독립을 한 경우가 많다. 그리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던 정치 지도자가 명성과 인망을 얻고, 결국 독립을 쟁취한 후 권력을 잡은 경우가 많다. 즉, 그들도 처음에는 독재자가 되고자 하는 권력욕 보다는, 나라를 위하는 순수한 마음이 더 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단 권력을 잡게 되면, 더구나 국가 전반의 시스템이 미비하여 권력자를 통제하기 어려운 후진국에서 권력을 잡게 될 경우에는 더더욱, 거의 필연적으로 부패한 독재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스스로 겸손하고 자제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돼버렸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내 직업은 영업사원이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는 소매 영업은 아니고, 거래처의 "구매 담당자”를 상대하는 B2B 영업사원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거래처 구매 담당자는 "갑"이고, 나는 "을"이다. 그런데, 장기간 구매 담당자로 일해온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낸다. 본인이 항상 옳다고 믿고, 상대방은 나보다 열등한 존재이며, 내 의사에 따라 뭐든지 좌지우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간단하다. 구매 담당자가 잘못을 해도 문제를 제기하는 "을"은 거의 없기 때문에, 너무 오랫동안 "갑질"에 익숙해진 것이다. (물론, 개인의 인성이나 교육 수준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다. 그러나, 그런 문제가 전혀 없는 구매 담당자는 본 적이 없다.)

서론이 길었는데, 사실 정말 하고 싶은 얘기는 재벌 2세들에 대한 것이다. 조그만 중소기업의 일개 구매 담당자 조차도 자신의 권한에 도취되어 추태를 보이고, 나라라고 보기도 어려운 후진국의 독재자도 왕과 다름 없는 안하무인의 삶을 산다. 하물며, 나름 선진국에 근접한 우리나라의 경제를 주무르는 거대 재벌가의 2세들은 과연 어떨까?

아쉽게도 내가 아는 지인 중에 재벌 2세는 없다. 따라서, 그들에 대해 직접 보고 들어 아는 바는 없다. 하지만, 앞서 말한 후진국의 독재자나 거래처 구매 담당자의 경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환경에서 살아온 그들의 모습은 어느 정도 유추가 가능할 것 같다. 젊을 때 엄청난 고생도 했고 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고 그래서 결국 현재의 위치에 오른 재벌 1세들과 달리, 2세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소위 말하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다. 단순히 돈만 많은 것이 아니다. 태어난 순간부터 자기 주위의 모든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삶을 살게 된다. (자기가 모시는 재벌 총수의 자녀에게 싫은 소리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리고 그렇게 살다가 나이가 차면 아버지의 재산과 직책을 물려받고 후계자가 된다. 그들의 삶에는 정상적인 인성 교육이 끼어들 틈이 없다. (인성 교육은 단순히 말로 설명하고 책을 읽도록 하는 것으로만 성취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자기 행동의 옳고 그름에 따라 칭찬을 받기도 하고 벌을 받기도 하면서 몸으로 체득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 결국, 그들에게서 정상적인 인성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으로 생각된다. 뉴스에서 심심치 않게 접하는 재벌 2세 또는 3세들의 일탈 행동은, 이런 성장 과정을 고려할 때,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있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커온 그들을 과연 비난할 수 있을까? 물론, 법을 어기면 법적인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본인의 선택과 관계 없이 가지게 된 인성적인 결함에 대해서 도덕적인 비난을 할 수 있을까? 이건 좀 애매한 면이 있다... 개인적으로 가끔 그런 상상을 해본다. 내가 재벌 총수라면 자식을 어떻게 교육시킬까?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안하무인의 망나니로 키우고 싶지는 않은데, 어떻게 하면 겸손함과 자제력을 갖춘 정상적인 인성을 형성시켜 줄 수 있을까? 아직 답은 찾지 못했다. 크게 의미 있는 상상은 아니지만, 일반인으로서도 자식 교육 측면에서 한번쯤 고민해볼 만한 질문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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