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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거부


최근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가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최근 헌법재판소의 판결이나, 향후 전망에 대해서는 뉴스나 신문 기사를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이처럼 단순하고 쉬운 문제가 왜 논란이 되는지 모르겠다.

일단,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주장은 “힘든 군생활을 회피하기 위해 병역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죽이기 위한 목적으로 훈련을 받는 것은 나의 종교적/개인적 신념에 어긋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가 없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국가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렇게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전과자가 됐다. 사실, 그들의 주장은 일견 이해가 간다. 사람마다 종교적/개인적 신념이 다를 수 있는데, 그러한 신념으로 인해 교도소 까지 가야 한다는 것은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병역을 거부했으니 어느 정도의 불이익을 받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전과자로 만드는 건 좀 심하다.)

그러나, 양심적 병역거부를 수용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군대에 가기 싫어서 고의로 허리 디스크를 유발하고, 스스로 살을 찌워 고도비만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 자기 손가락까지 자르는 세상이다. (그 정도로 우리나라 군대가 열악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수용하면, 단순 병역기피자들이 스스로를 양심적 병역거부자라고 주장할 것이 자명하다. 이는 독심술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밝혀낼 방법이 없다. (물론, 그 동안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군대에 가기 싫어 거짓말을 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들의 신념에 동의하진 않지만, 어쨌든 그 신념을 위해 전과자가 되는 것까지 감수할 정도라면, 그 신념은 진심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마치 어려운 문제인 것처럼 적었지만, 사실 해결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대체 복무제도를 만들되, 군생활 보다 더 긴 기간 동안 더 힘든 일을 하도록 하면 된다. 앞서 말했지만,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군생활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자기 “신념”에 어긋나기 때문에 거부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하면, 대체복무가 육체적으로 더 힘든 일이라도 거부해선 안된다. 이렇게 하면, “가짜”들은 차라리 군대를 선택할 것이고, “진짜”들은 육체적인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전과자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있으며, 국가는 기피업종에 동원할 수 있는 값싼 노동력을 얻을 수 있어 좋다.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그러면, 대체복무자에게 어떤 일을 시켜야 할까? 장애인 돌봄 따위의 얘기가 나오는데, 이는 말도 안되는 헛소리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다지만) 비인간적인 대우를 감수하면서, 밤낮으로 육체 노동과 군사훈련에 시달리고, 여러 화기를 다루는 과정에서 생명의 위협까지 느껴야 하는 군생활을 어떻게 장애인 돌봄과 비교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가장 적절한 방법은, 국가가 진행하는 여러 공사 현장에 그들을 투입하는 것이다. 그런 일자리야 차고 넘쳐날 테고, (일반적인 일용직 노동자 보다 훨씬 적은 임금을 줘도 될 테니까) 비용절감에도 도움이 되며, 그 정도 강도와 위험은 있어야 군대에 가는 사람과의 형평성도 맞다.

어쨌든, 이처럼 쉽고 단순한 문제가 왜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았는지, 그리고 왜 이제야 논란이 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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